
아무맛도 안나는걸 왜 먹음?, 걍 물마셔
불과 1년전 까지는 나도 탄산수를 마시는 사람들에게
똑같은 말을 했다.
한 모금 얻어마셔 봐도 아무맛도 나지 않았다.
변태같이 슬쩍 있는듯 없는듯 사라지는
레몬향만 존재했으며
그 뒤에 찾아오는 심심한 청량감만이 전부였다.
어느날 회사에서 간식 주문을 취합 할 때
굉장히 잘생긴 사원님 한분이
탄산수 한박스를 요청했다.

'ㅈㄴ 맛있겠다'
가끔 욕하던 넷플릭스 시리즈나 드라마가
글로벌 시청률 1위를 찍었을 때
갑자기 안보이던 감독의 의도가 보이고
마지막화 까지 재밌게 보곤한다.
큰 감흥없이 읽었던 한강작가의 책이
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땐
안보이던 그녀의 애환과
뛰어난 필력이 눈에 들어왔다.
이번엔 트레비였다.
그냥 레몬 담궜다 뺀 물 정도로 생각했던 트레비가
갑자기 개 맛있게 보였다.
더운 여름에 '치ㅡ익' 하는 소리와 함께 뚜껑을 따고
얼음 가득채운 텀블러에 트레비를 따른 뒤
벌컥벌컥 마시는 상황을 상상했다.
심심한 향과 함께 몰려오는 청량함을 상상했다.
그 사원님 처럼 잘생긴 얼굴이 되는걸 상상했다.
이후 트레비가 도착했을 때
얼음 가득채운 텀블러에 트레비를 가득넣고
벌컥벌컥 마셨다.
벌 컥 벌 컥

상상했던 청량감이 실제가 되어 다가왔다.
상상했던 변태같던 레몬향도 실제가 되어 다가왔다.
상상했던 잘생긴 얼굴도 실제가 되어 다가오진 않았다.
난 트레비가 도착하는 동안 최고의 청량함을 상상했고
트레비는 그저 최고의 청량함으로 보답했다.
그날 이후
무더운 여름날 상상을 실제로 만들어준 트레비를
난 사랑한다.
어, 평양냉면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런 느낌일까.
개 맛없던데 그거

걍 물에 탄산 넣은거라 치아부식만 조심하면 되고
당류에 대한 죄책감도 없다.
대 황 비
근데 맨날 사 먹긴 좀 비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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